발렌타인 데이와 초콜릿에 관한 오해 … – 중동근 030

 

해마다 2월 14일 그 [발렌타인 데이]라는 날이면 제과점과 백화점등에서는
초콜릿 판매에 열을 올리고 사실 또 많이 팔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외국의 풍습이니 옳지 않고 칠석날 찹쌀떡을 선물하자 하는 이야기도 있고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건 일본인들의 상술이다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해서 간단하게 초콜릿의 역사를 한번 훑어 보자면

초콜릿에는 전쟁과 사랑의 두가지 역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그 검은 빛깔처럼…

16세기 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카카오나 초콜릿이 무엇인지를 몰랐었습니다.

초콜릿의 원료는 중남미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카카오나무(학명:Theobroma cacao)의 열매인

Cacao Bean으로부터 얻는데
원산지는 남미의 아마존강 유역과 베네주엘라의 오리노코강 유역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콜룸부스의 4번째 항해 도중 유카탄반도 근해의 원주민으로부터 빼앗은 카누에 여러 종의 농산물이 쌓여 있었고
그 중에 Cacao Bean이 있어 Spain으로 갖고 돌아온 것이 1502년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무엇인가에 사용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는지 식용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즈텍이나 마야인 아니 그 이전 기원전 1500년경부터 중남미에 살았던 고대 문명인 올멕인들은
이미 카카오를 재배했었다고 하지요…
아즈텍 사람들은  “xocalatl”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따뜻한 혹은 약간 씁쓸한 액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에서 초콜릿이란 이름이 나왔지요.

아즈텍이나 마야의 왕들은 공물로 바쳐진 처녀와 동침하기전에
이 코코아를 나눠 마셨다고 하는데
바로 코코아의 에로티시즘에 관련된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늘에까지 이어집니다.

1519년 Spain이 웨루 디 난도 코루디스를 대장으로서 멕시코에 원정해서 그 당시 처음으로
Cacao Bean의 가치와 사용법을 알게 됐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원정대가
Spain 황제 칼 5세에 보고했던 문장 가운데도 Cacao bean의 귀중성 때문에
화폐로서 통용하고 있었고, 그 효과는 피로회복 음료, 강장 영양제로서
다른 것과 비교할 만한 물건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코코아를 먹은 멕시코 정복 군대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멕시코를 정복했다고 하지요.

아즈텍과 마야가 중남미를 정복하던 피의 역사에 이어
카카오에 흐르는 전쟁의 역사는 유럽인에 의해 네슬레와 M&M’s 로 이어 집니다.

당시 아즈텍과 마야인들은 코코아를 보통은 불에 볶아 돌로 갈아 부순 다음 물에 녹여 바닐라나 후추로 맛을 내기도 하고
맑은 물에 녹여 향신료와 벌꿀로 희석해서 마시기도 했으며 왕후와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고는 쉽게 마실 수가 없었고,
왕후와 부자들은 하루에 50컵 이상씩 마셨다고 하며 하층계급에서는 맑은 물에 카카오와 옥수수가루, 벌꿀을 섞어서
성형, 보존했다고 합니다.

이런 카카오는 그 귀함때문에 남미에서는 돈처럼 사용되어

물건이나 노예등의 매매, 공물이나 세금으로도 취급되었습니다.

1520년 정복자 코루디스가 유럽에 Cacao Bean을 갖고 돌아왔으며 Cacao Bean이 스페인 왕실에 헌납된 이후
카카오 빈의 공식적인 첫 선적은 1585년에 멕시코 베라 크루즈에서 세빌리아로 보내 졌고

그 이후 코코아는 왕후, 귀족, 부자 등 상류계급의 독점적 음료로서 관허 전매의 형태로 보급되었습니다.

네델란드의 해적선에 의해 스페인 선박이 약탈되면서 스페인선박에 있던 Cacao Bean이
네델란드인에게 건네졌고, 이탈리아인이 Spain으로부터 Cacao Bean을 갇고 돌아오기도 하고,
France에도 전달되어 왕실에서 애용되기도 하고 유럽 각지에 넓게 퍼졌으나 여전히 비싼 것으로
왕실이나 귀족 혹은 부자들만이 먹을수 있는 식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돈만 있으면 신분에 상관없이 사먹을수 있게 된게 1600년대 말기부터인데
산업혁명 당시 칼 마르크스가 영국 섬유 공장에서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노동자들도 그들이 생산하는 고급 제품을 이용할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본론을 쓰던 곳이 바로 영국이었지만
이미 초콜릿의 경우에서처럼 신분제를 뛰어 넘는
자본의 힘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곳이라는 것이 묘한 아이러니지요.

지금 인도도 신분제가 일부 붕괴되고 있는데 그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돈이더군요.

돈은 힘이 참 세다는 거…
 
그 반면에 캐비아의 원산지 러시아는 공산화 이전부터 공산화 이후에도 캐비아는 당의 귀족만 먹는 것이었다는 거…

도대체 마르크스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꿈꾸었던 거야?

음 초콜릿 이야기 하다가 별게 다 나옵니다.

하여간 계속 초콜릿 이야기 나갑니다.

발렌타인 데이와 초콜릿

궂이 좀 된장틱하게 표현하자면
Historia de amor… 가 아니고…
초콜릿의 역사가 되기도 하겠습니다.

일찌기 마야와 아즈텍에서 카카오의 용도가 그러했듯이
약간의 흥분제와 각성제 성분이 있었던지라
카카오는 사랑을 위한 음식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유럽에 도착한 카카오는 산업혁명때까지는 먹는 방법이 단순했었지만
19세기로 넘어오면서 혼합기가 발명되고
1828년에는 네델란드의 반호텐이 코코아 버터를 짜내는 방법을 착안하면서
가공산업이 활기를 띄게 됩니다.

그리하여 영국의 리차드 캐드버리(Richard Cadbury)는

1861년  발렌타인 데이를 위해 하트 모양의 초콜릿 캔디 박스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합니다 밑줄 좌—악

즉 대량 생산된 초콜릿이 발렌타인 선물로 쓰인 것의 시초가 바로 1861년의 캐드버리가 되겠습니다.  

그 후 1875년에는 스위스의 다니엘 비터가 요즘과 같은 밀크 초콜릿을 만들었고
1876년에는 Lindt (유럽에서는 유명한 초콜릿 브랜드)가 케이크 데코레이션용 초콜릿 덩어리를 만들어
대량소비가 됨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등에서는 카카오 재배가 성행하게 됩니다.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카카오 대량재배가 성공한 곳이 바로 영국식민지인 골드 코스트 지역으로
이곳은 나중에 Ghana로 독립하게 됩니다,

바로 모제과의 유명한 가나 초콜릿이란 이름이 바로 그 나라의 이름이지요.

초콜릿과 전쟁의 역사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 원정대는 코코아를 먹었고
뛰어난 코코아의 흥분과 각성성분으로 멕시코 정복은 아주 빨리 이루어 졌습니다.

그 전쟁의 역사는 네슬레로 이어지는데
스위스의 네슬레는 원래 연유 제조회사로서 초콜릿 제조에는 좀 늦게 뛰어 들었습니다.
1905년부터 프랑스 풍의 단맛이 강한 밀크 초콜릿을 만들었지요.

그러나 1900년대초에도 어린이용 귀리와 연유 사업에 주로 치중하던 네슬레는
1차 대전동안 유통의 문제로 인해 신선한 우유의 공급이 힘들어져서 연유의 수요가 증가해
상당한 이익을 보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시 신선한 우유를 찾게 되고 분유의 매출이 감소하자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초콜릿 판매에도 힘을 들이기 시작해서 오늘의 네슬레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전쟁에 관련된 초콜릿이 바로 M&M’s 입니다.
포레스트 마스라는 미국인은 스페인 내전동안 군인들이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녹는 것을 막기위해
두껍게 설탕으로 코팅한 초콜릿을 먹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1941년에 특허를 받아 양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원래는 종이 튜브에 들어가는 형식이었지만 1948년부터 플라스틱 봉지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초콜릿과 전쟁의 관련은 1984년 1차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매우 더운 이라크의 환경에서 병사들은 초콜릿을 먹고 싶어했고
미국 정부는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며 뜨거운 기후 아래에서도 녹지않는
초콜릿을 개발하게 됩니다.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의 초콜릿 역사

미국의 대표적인 초콜릿 상표라고 하면 Hershey가 되겠지요.
18살때이던 1876년에 자신의 캔디가게를 열었던 허쉬는 1893년에 시카고 국제 박람회에서
독일의 초콜릿 제조기들을 사서는 1894년부터 초콜릿 입힌 카라멜을 시작으로 수많은 카카오 가공식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초콜릿을 손댄 것은 일본으로 

1878년에 일본 도쿄의 풍월당에서 Chocolate 제조했고
1899년에는 森永商店(모리나가 제과의 전신)이 Cream Chocolate 제조 판매했습니다.
이후 1918년에는 모리나가가 직접 Cacao bean을 수입해서 초콜릿을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많은 일본 기업들이 초콜릿 제조를 시작했으며
1949년에는 일본 롯데가 초콜릿 제조에 뛰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한제국 말기에 고종황제의 외국인 요리사 손탁씨에 의하여
황실에 처음 소개 되었으나
그 이후에는 미국제와 일본제가 거의 전부였으며
1968년에 동양제과와 해태제과가 초콜릿을 제조 하기 시작했고
1975년에는 한국 롯데제과 가 초콜릿산업에 참여했습니다.
  
사랑과 전쟁… 그 열정의 현장에 같이 있게 되는 초콜릿…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 많이들 주고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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